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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들- 이 근(외교82). 작성자 admin 작성일 2019.03.16
          

이근(외교 82)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합리적 의심들

 

북미 비핵화 정상회담은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위원장(이하 김 위원장’)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서훈 국장원장이 201735일 특사단을 이끌고 김 위원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가 비핵화의 의지를 말했고, 정 실장과 서 원장이 그 의지를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면서 소위 한반도 비핵화북미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비핵화 협상이 단순히 김 위원장의 입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우리는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떠한 조건에서 비핵화를 할 것인지, 과연 비핵화의 진정성이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여 최대한 명확하게 그 내용을 파악해야 한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및 계획에 대한 합리적 의심은 우리의 안보와 국가이익을 위해서 너무나 당연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협상을 먼저 제의한 북한은 그 의심을 해소해 주어야 할 책임을 지닌다. 물론 우리도 그 의심을 해소하기 위하여 한미 공조 하에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하지만, 북한은 협상 전략을 밝히지는 못하더라도 협상을 통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목표는 분명히 밝혀야 한다. 최소한 남북한과 미국이 같은 목적지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명확한 준거가 있어야 단계적 협상이든 빅딜이든 진지하게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북한이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목적지를 제시했을 때, 협상의 판이 깨지고 북한은 핵 보유의 명분을 확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계획에 대해서 이 글에서 몇 가지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며 우리 정부와 북한은 그 의문을 구체적 증거를 가지고 해소해주기를 바란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및 진정성에 대해 크게 세 가지 의문이 존재한다. 첫째, 왜 북한은 핵을 완성하자마자 바로 포기하기로 결정했을까? 북한은 김 위원장 체제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거칠게 핵 개발을 추진했다. 2016~17년 사이 세 번의 핵실험을 했고,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빠른 속도로 늘리며 미국 본토에까지 직접 위협을 가하는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했다. 227~28일 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풀어달라고 한 5개의 민수경제관련 UN 경제제재는 다 이 시기에 부과된 것이다. 이렇게 민수경제에 극심한 어려움이 닥칠 것을 예상하고 무리한 핵 개발로 20171129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 불과 3개월 후에 다시 포기하겠다고 협상을 제의하였으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가는 제의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 위하여 핵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데, 경제의 영역이라면 마치 돈을 포기하기 위하여 돈을 벌었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우리 특사단은 김 위원장의 이 비핵화 의지를 듣고 바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였다고 하는데, 어떤 근거로 그 진정성을 믿었는지, 합리적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북한은 핵 포기 후 어떻게 자신의 안전보장을 담보하려 하는가? 국제정치의 기초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재래식 전력이 약하고 동맹이 없으며, 언제 위협이 될지 모르는 핵보유국에 둘러싸인 북한이 뭘 믿고 핵을 포기하려 할까라는 의문을 가질 만하다. 그래서 북한이 조건부 핵 포기를 제시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그 조건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는가? 만약 조건부 핵 포기가 진정성이 있는 제안이라면 북한 지도부는 핵의 완전한 포기와 함께 시작되는 신() 외교안보의 큰 그림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포스트 비핵화 안보전략과 구상 속에는 중립화 방안이 있을 수도, 한미동맹과 미국의 핵우산 철거가 있을 수도 있으며, 중국과의 안보협력 강화나 남북 연합 방위체제 같은 것을 구상하고 있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것을 우리가 정확히 알고 있어야 조건부를 들어줄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북한이 최종적 비핵화와 한미동맹 및 핵우산을 바꾸자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북한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라면 이는 국론이 극심하게 분열되는 핵폭탄 급제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 북한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도, 그것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존재한다 해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 순간에 날벼락 같은 요구를 하여 그 동안 부분적 제재완화를 얻어낸 후 핵보유의 명분을 쌓을 수도 있다. 북한은 큰 그림을 명확히 밝혀야 하며, 만일 끝까지 숨긴다면 우리의 정보당국이 대신 그 의구심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

셋째, 북한은 왜 갑자기 미국의 안보적 상응조치에 관대해졌는가?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하노이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 31일 새벽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비핵화에 상응하는 안보조치를 취하기 어려울 것임을 고려하여 비핵화의 상응조치로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미국의 위협 때문에 경제제재를 무릅쓰고 핵개발에 매진했다던 북한이 갑자기 미국의 안보조치에 관대해졌다. 신뢰구축을 위해 민수용 경제에 관한 5개의 UN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했는데, 이는 안전보장보다는 신뢰구축 협상을 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미국에 제재완화라는 신뢰구축 조치를 요구하는 만큼 자신들도 비핵화가 아니라 제재완화에 상응하는 신뢰구축 조치를 제공했어야 설득력이 있다. 이를테면, 정치·경제 개혁, 인권문제 개선, 헌법개정 등과 같은 신뢰구축조치를 만들어 교환했어야 논리가 맞다. 그런데 북한은 핵무기는 보유한 채 경제적 탈출구를 꾀했으니, 과연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앞으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한미가 북한에 이러한 의구심 해소를 요구하여야 한다. 의문을 해소하지 않은 채로 제재완화를 지속 요구한다면, 이는 북한이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제재완화 협상을 시도한다는 또 다른 의심을 낳을 것이다. 비핵화의 진정성이 없을 때 제재완화는 오히려 더 이상의 비핵화를 하지 않아도 되는 디스인센티브로 작동할 것이다. 지금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우리가 북한에 가장 시급하게 요구해야 할 것은 구체적인 포스트 비핵화 안전보장 로드맵이다. 이 로드맵 없이는 아무리 단계적 협상이 효과적이더라도 현 단계의 협상이 비핵화라는 긴 여정 중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북한의 예상치 못한 제의로 중간에 협상이 중단되어도 그 책임을 온전히 북한에게만 돌릴 수 없게 된다면, 북한은 핵 보유와 경제발전이 가능한 진정한 병진을 완성할 명분을 얻는다. 대통령이 천명한대로 우리의 목표가 임기 내 비핵화라면, “진정한 병진이 완성되는 시나리오는 사전에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 내 판단으로는 하노이에서 미국은 그러한 시나리오를 제거하기 위해 회담을 결렬시켰다.